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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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報恩邑)

지산리(芝山里)

1. 위치

면적 2.39㎢, 인구 87가구 246명(1999년말). 본읍의 서쪽에 위치하며, 동은 금굴리(金掘里), 서는 수한면, 남은 삼승면(三升面), 북은 수정리(水井里)에 접함


2. 연혁

보은군 서니면(西尼面)지역으로 건지봉 밑이 되므로 지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곡리(泉谷里), 두지리(斗之里), 홍개리(洪介里), 개경리(開慶里)를 병합하여 지산리라 하여 보은읍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개경리 : 노가끔 마을이라고도 함.
  • 노가금(開慶里) : 지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 못을 건너서 가는 마을 노성증 묘가 이곳에 있었는데, 삼승면 둔덕에 사는 황씨라는 사람이 그 묘를 파내고 자기네 묘를 그 자리에 썼다하여 ‘개경리’라고도 함.
  • 두지골(斗之洞) : 노기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조그만 샘이 있음.
  • 샘골(泉谷) : 두지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에 샘이 있음.
  • 선학동 : 샘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 원지산이라고도 함.
  • 수무골 : 두지골에 딸린 마을. 전에는 숲이 우거져 수목골이라고 하던 것이 변하였음.
  • 홍갓들(鴻坪) : 지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지형이 기러기 날아가는형상이라고 함.

4. 기타지명

  • 감나무골 : 홍갓들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나무가 많았음.
  • 건지봉 : 원지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지형이 스님의 바랑망태기를 매고 있는 형이라고 또한 중상호라고 함.
  • 고용골 : 두지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숲이 많고 골짜기가 길어서 ‘수목골’이라고도 함.
  • 너마지기 골 : 원지산 북쪽에 있는 논으로 서마지기 밖에 없음.
  • 등선바우(登仙岩) : 등선암에 있는 바위로 신선이 여기서 놀다가 승천했다 함.
  • 미역골 : 원지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한적해서 목욕하는 골이라고 함.
  • 바둑바우 : 등선암에서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 함.
  • 비선골 : 원지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장군들의 비석이 많아 비석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것임.
  • 삭바우들 : 노가끔 서쪽에 있는 들에 삭바우가 있음.
  • 서남재 : 원지산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사낭당이 있었음.
  • 서당골 : 등선암 밑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서당이 있었음.
  • 서리고개 : 원지산에서 보은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에는 ‘서리사’ 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짐
  • 승골 : 두지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소나무가 많았다고 함.
  • 숙고개 : 원지산에서 수정리 바깥 수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장군들이 지나다니며 쉬어간 고개
  • 예주고개 : 원지산에서 홍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동리 사람들이 단술을 담아와서 먹으며, 비가오면 이곳에 와서 무지개 구경을 하였다고 함.
  • 옻샘 : 숙고개 남쪽에 있는 약샘. 옻이 올라와 이곳에 와서 씻으면 낫는다고 했음.
  • 장고개 : 원지산에서 보은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 큰가끔산 : 원지산 서쪽에 있는 큰산
  • 효자지(孝子池) : 지산 남쪽에 있는 못, 옛날에 백효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재골샘에서 굴비를 구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하여 ‘효자지’라고 부름

5. 문화유적

  • 김수온부조묘(金守溫不祧廟)
    지산리에 있는 영산 김씨 종증 소유의 지방유형문화재 제 60호, 좌리공신 영산부원군 김수온의 부조묘이다. 1487년 성종(成宗) 18년에 보은읍 종곡리에 창건되었던 것을 1664년 현종(顯宗) 5년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47년 후손 김태현(金泰鉉)이 증수하였고 1981년에는 해체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 지산마을 노래
    50여년 전부터 지어 불렀다는 노래로 2절까지였는데 1절만 전해지고 있다.

    <가사>
    북쪽에는 건질봉이 반공에 솟고
    서쪽에는 등선바위 웅장하도다
    남쪽에는 효자지의 창창한 물결
    동쪽에는 속리산이 웃고 비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