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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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報恩邑)

어암리(漁岩里)

1. 위치

면적 2.24㎢, 인구 100가구 304명(1999년말). 본읍의 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길상리(吉祥里), 서는 죽전리(竹田里), 남은 월송리(月松里), 북은 풍취리(風吹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사각면(思角面)의 지역으로서 어룡골 또는 어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신리(城新里), 탁동(濯洞), 만지리(晩旨里)를 병합하여 보은읍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맘마루(晩旨) : 어암 남쪽에 있는 마을.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바깥소식이 늦다 하여 만지 마을
  • 새터 : 어암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어룡곡(漁龍谷) : 오늘날 어암1리가 되며, 사각면사무소(사각면사무소)가 있었고, 뒷산으로 길상으로 가는 범욱재, 삼봉재, 새골재가 있음.
  • 작은 탁골 : 탁골의 작은 마을
  • 탁골(濯洞) : 어암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하여 탁골이라 함.

4. 기타지명

  • 공밭골 : 뒷골 돌쪽에 있는 골짜기. 콩밭이 많아 콩밭골이라 하였고 또한 공씨 소유의 밭이었다고 하여 ‘공밭골’이라 부름
  • 답앞들 : 어룡골 서북쪽에 있는 들. 돌리들이라고도 부름.
  • 도란말 : 생여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솔밭을 돌아서 간다고 함.
  • 뒷골 : 어룡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동네 뒤쪽에 위치함.
  • 만선암 : 어용골에 있는 절 (주지 김수원)
  • 맘마루 고개 : 어룡골에서 맘마루로 넘어가는 고개
  • 밀개봉 : 탁골 서북쪽에 있는 산. 봉우리가 밀개처럼 생겼다 하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산.
  • 범익재 : 오룡골에서 외속리면 길상리 양지편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범이 이곳을 많이 다녔다고 해서 ‘범목재’ ‘범우재’라고도 부름.
  • 북문이골 : 삼년성의 북문이 있는 골짜기.
  • 산지당터 : 어룡골 동남쪽에 있는 터에 산제당이 있었음.
  • 삼봉재 : 어용골에서외속리면 길상리 관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봉우리가 셋임.
  • 새골재 : 어룡골에서 탄부면 신동리 새골로 넘어가는 고개.
  • 새우바위 : 잔돌이 많아서 새우바위라 함.
  • 생여바위 : 어룡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상여집이 있음.
  • 소죽댕이 : 어룡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동리가 번창할 때 소를 많이 먹이던 곳으로 ‘시죽골’이라고도 함.
  • 아미지못 : 삼년산성 안에 있는 연못터. 바위에 아미지(蛾眉池) 석자가 새겨져 있음.
  • 장승배기 : 탁골 동네를 감싸고 삼년성으로부터 내려온 산예 장승을 세웠던 곳임.
  • 찬샘 : 탁골 서쪽에 있는 샘. 사계절 찬물이 나온다 하여 찬샘.
  • 홍골(檢谷) : 탁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단풍이 유난히 곱게 물들어 홍골이라고도 함.
  • 홍골못 : 새터못이라고도 하는데 1945년 보를 막아 농경지 2만여 평에 농사를 짓게 되었고. 새터들, 송산이들이라고도 함.

5. 문화유적

  • 삼년산성(三年山城)
    보은읍 어암리, 성주리, 풍취리, 대야리 경계에 있는 옛 성으로 470년 (신라 자비왕 13년)에 3년동안 축성한 산성으로 486년에 개축. 길이 1680m 산성의 기초 벽쌓기, 돌치성, 수문, 등에서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 우리나라 최고의 성이다. 사적 제235호로 지정되어 복원중에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완공까지 요원한 실정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 백송(白松)나무
    어암리 탑골 뒤에 있는 나무. 천연기념물 104호. 높이 11m 둘레 2m 나뭇가지 길이 5~7m정도, 이 나무는 조선 정조때 사람으로 송명흠(宋眀欽)의 문인으로 1779년 (正祖3년 己亥)에 도의 추천을 받아 선공부봉ㅇ사에 특별히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오직 학문연구에만 몰두한 김상진(金相進) 선생이 1792년 (正祖 16년 壬子) 중국에 다녀올 때 종자를 가지고 와서 심었다고 함.
  • 보은사(蕔恩寺)
    오정산 삼년산성 안에 있는 사찰. 1902년 10월에 창건하였고 1941년 박경하(朴鏡荷)가 중창하였다. 태고종에 속해 있으며, 주지는 조웅제(趙雄濟)스님이었다.

6. 전설

장사로 이름난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남매는 모두 건강하고 억세기로 말하면, 태산이라도 들고 천근바위를 움직일 힘을 자랑했다. 그런 가운데 남매중에 누가 더 힘이 센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오빠가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리면, 누이는 바위를 손으로 쳐서 산산조각을 낸다. 날이면 날마다 남매는 힘자랑을 하지만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이를 다 못한 어머니는 “너희 남매는 천하장사로다. 매일 같이 힘자랑을 하다같 끝이 없겠으니, 오빠는 굽높은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몰고 서울을 다녀오너라. 그리고 오빠가 서울을 다녀오는 동안에 돌을 날라다 산의 능선을 따라 성을 쌓도록 하여라” 이 시합에서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의 목을 치도록 하라는 시합이었다. 너무나 잔인한 시합이었다. 시합 결과에 따라 아들이건 딸이건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 딸은 성광을 다 쌓아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초조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아들을 살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딸이 문짝을 만들려는 순간에 “네 오라비가 졌구나?” 하면서 새참이나 먹고 하도록 하였다. 뜨거운 팥죽을 먹도록 하여 지체토록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오빠가 도착하였다. 시합에서는 문짝을 달지 못하였기 때문에 딸은 시합에서 지고 말게 된 것이다. “애라 아무리 언약이 중하기로서니 딸을 죽일 수 없다”고 애원하였지만, 아들은 냉담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장사가 되려는 순간 언제든지 누이 동생 때문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한 오빠는 누이 동생이지만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에게 목숨을 구걸하기보다 죽는 것이 결과에 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누이동생은 홀로 남은 어머니를 잘 봉양토록 유연을 남기고 오빠의 칼에 찔려 죽어 갔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