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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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報恩邑)

종곡리(鍾谷里)

1. 위치

면적 4.83㎢, 인구 88가구 221명(1999년말). 본읍의 북동쪽에 위치하며, 동은 내속리면, 서는 학림리(鶴林里), 남은 강신리(江新里), 성족리(聲足里), 북은 산외면(山外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북처럼 생긴 종산(鍾山)이 있으므로 북실 또는 종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종동리(鍾東里), 종남리(鍾南里), 월안리(月岸里)를 벼합하여 종곡리라 하였다.
명종(眀宗)때 대곡(大谷) 성운(成運) 선생이 이곳에 살면서 남명(南溟) 조식(曺植), 화담(花藫) 서경덕(徐敬德),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과 함께 산수(山水)를 즐겼다고 함.


3. 자연마을

  • 다라니(월안말) : 종곡 동남쪽 마을에 앞산이 달 모양을 하고 있음.
  • 동편말(鍾東里) : 종산 동쪽에 있는 마을.
  • 모정골(茅亭谷, 鍾南洞) : 종산 남쪽에 있는 마을.
  • 서당골 : 종남동에 있는 마을로 서당이 있었음.
  • 종서말 : 종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삼성동이라고도 함.

4. 기타지명

  • 감동이골 : 삼성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신함리 감동 마을 이름을 딴 것.
  • 감정이고개 : 삼성동에서 신함리 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곱냉이 고개 : 종남동에서 산외면 문암리 곱냉기로 넘어가는 고개. 비옥한 땅으로 곡식이 배로 난다고 함.
  • 구룡티(九龍티) : 중동말에서 내속리면 하판리 늘그니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가 구불구불하여 용이 움직이는 것 같다하여 구룡티라고 하고 산의 형국이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기상이라고도 함.
  • 금덕봉 : 다라니 북쪽에 있는 산.
  • 놋점골 : 수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놋그릇을 만들었다 함.
  • 덕고개 : 삼성동에서 학림리 대바위로 넘어가는 고개가 언덕처럼 생겼음.
  • 독적골 : 미역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장독처럼 생김
  • 등물골 : 삼성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날에 물이 맑고 한적한 곳이어서 여름 더위에 등목하기 좋았다고 함.
  • 들오니 : 삼성동 동북쪽에 있는 들. 저수지 안으로 쑥 들어가 있는 들.
  • 듬바우 : 바위 틈 사이에 바위가 끼어 있다고 해서 틈바위라 불리다가 듬바위로 됨.
  • 미역골 : 종남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미역 감던 골이 있음.
  • 북산(鍾山) : 부종골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형이 종처럼 생겼음.
  • 선바위 : 삼성동 서북쪽에 서있는 바위.
  • 수저골 : 종남동 동편 말 사이에 있는 골짜기. 이곳에 물을 가둘 곳이라 하여 수저골 이라 하기도 하고 또한 형상이 수저와 같다고도 함.
  • 수철령(水鐵嶺) : 종남에서 내속리면 북암 시장터로 넘어가는 고개 나무가 없다 하여 무수목 이라고도 부른다 하나 본말은 ‘무쇠목’이 변한 것임
  • 작은다라니(小月岸) : 삼성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모양이 반달 같다고 함.
  • 종곡저수지 :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지(九龍池)라 불려 오다가 1969년 저수지를 만든 후 종곡 저수지라 칭함.

5. 문화유적

  • 김기서 효자문(金基瑞 孝子門)
    종곡에 있는 경주 김씨 종증 소유의 정문, 김기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67년 ??4년에 명정 1870년 동몽교관조봉대부에 추증되었다.
  • 김민태 효자문(金玟泰 孝子門)
    종곡리에 있는 정문, 경주인 김민태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부모님 병환시에는 밤을 지새워 간호했고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는 등 지극한 효행을 하였고 덕행으로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함.
  • 김을식 묘비(金乙湜 墓碑)
    종곡리에 있는 고려(高麗) 공양왕(恭嚷王)때, 판군기시사(判軍器侍事)를 지낸 경주인 김을식의 묘비, 조선 중기 때 6대손 승지(承旨) 가기(可畿)가 짓고 그의 아들 참판(參判) 덕민(德民)이 쓴 묘비가 오래되어 판독이 어려움으로 17대손 기진(基震)이 짓고 18대손 범구(範九)가 쓴 비를 다시 세움.
  • 고령 신씨 의열문(高靈 申氏 義烈門)
    종곡리에 있는 정문, 고령 신씨는 대사헌 졸제신식(捽薺申湜)의 딸로 경주인 참판(參判) 김덕민의 부인이다. 정유재란때 피난 도중 왜적을 만나자 적의 칼을 빼앗아 적을 찔러 죽이고 적의 손이 범한 자신의 유방을 도려내고 순절하였다. 1598년 선조 31년에 적을 죽였으니 충의(忠義)요 남편에 대한 정절(貞節)을 지켰으니 열(烈)이라 하여 의열(義烈)이라 명정되였다.
  • 모현암(慕賢庵)
    경주 김씨 종증 소유의 비지정문화재, 조선 명종(明宗)때 산림학파(山林學派)의 거두였던 대곡 성운(大谷 成運)과 종산 김천부(鍾山 金天富)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던 자리에 1887년 고종(高宗) 27년에 후학들이 두분을 사모하여 모현암이라 현판하였다.
  • 판사공재실(判剚公齋室)
    경주김씨 종증 소유의 비지정 문화재, 고려 판군기시사(判軍器侍事) 김을식(金乙湜)의 재실로 전면 5칸 옆면 2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으로 1961년에 중창한 건물이다.
  • 세강재(世講齋)
    경주 김씨 소유의 비지정 문화재, 김민태가 후생들을 훈육하던 곳인데, 그의 효행이 지극하고 학문이 깊어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은사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강당을 건립하니 삼성동(三省洞)에 있다 하여 삼성재(三省齋)라 하였다. 후예 세강재라 고쳐 부른다.
  • 의령남씨 효부문(宜寧南氏 孝婦門)
    경주 김씨 소유의 정문, 효부 의령 남씨의 행적을 기리고자 세운 정문이다. 남씨는 공섭의 딸로 효자 김기서의 아들 극태(極泰)의 부인으로 시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여 그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어 1907년 고종(高宗) 44년에 명정(銘旌)되었다.
  • 세덕사(世德柌)
    경주인 판도판서 장유(將有)의 14세손 복찬을 비롯하여 4대의 일곱 분의 위패를 봉안한 제당이다.

6. 전설

  • 종산
    보은군 보은읍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흔히 “북실”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이 마을 뒤에 북산(鍾山)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 옛날부터 이 산에서 북소리가 은은히 들리면 이 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경주 김씨 문중에서 과거에 합격했다는 사람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북소리가 들리는 산을 “북산”이라 하고 마을이름을 “북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중엽 현종(顯宗 2)때 이 마을에 시주를 왔던 젊은 중이 마을의 선비에게 쫓겨난 앙심으로 야밤에 종산에 올라가서 마을의 지혈을 끊고자 산봉우리를 파헤치니 학 한 마리가 하늘로날아올라 갔다고 하는데 그 뒤부터 북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7. 기타

  • 종곡팔경(1)
    약수정(藥水井), 선유암(仙遊岩), 삼성봉(三省峯), 도림원(桃林院), 월안봉(月岸峯), 금덩봉(錦德峯), 구룡담(九龍潭), 모현암(慕賢庵)
  • 종곡팔경(2)
    • 종산고송(鐘山古松) : 북산바위 위에 홀로 서있는 늙은 소나무 모습
    • 대곡청풍(大谷凊風) : 대곡선생이 살던 모현암 주위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 철령귀운(鐵嶺蘬雲) : 수철령고개 위에 무심히 모여드는 구름 모습
    • 덕봉조운(德峯朝雲) : 금덕봉의 해돋을 때 구름모습
    • 월안제경(月岸霽景) : 다라니의 비가 그치고 개인 하늘의 광경
    • 도림춘화(桃林春花) : 도림이 산의 가득히 피는 봄꽃
    • 선암초적(仙岩樵笛) : 선바위의 나무꾼이 피리부는 모습
    • 삼산약천(三山藥泉) : 한모금 마시면 폐부까지 시원한 삼산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