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향토사료집 > 보은의지명
충청북도의 남부에 위치한 군이다. 관내에 속리산과 법주사, 정이품송과 삼년산성이 있다. 동쪽에는 백두대간에 위치한 속리산의 여러 험준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 서쪽에는 한남금북정맥의 산지가 뻗어 있다. 속리산은 동류하는 낙동강, 남류하는 금강, 북류하는 남한강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금강 수계의 보청천은 내북면 하궁리에서 발원하여 보은읍을 지나면서 고승들을 형성하고 남류하여 금강과 합류한다. 보청천의 주요 지류로는 삼가천과 항건천이 있다. 보은읍 · 내북면 · 산외면 · 속리산면 · 장안면 · 마로면 · 탄부면 · 삼승면 · 수한면 · 회인면 · 회남면의 1읍 10면 174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현재의 보은 지역은 조선 시대 보은현과 회덕현 지역으로 1895년에 실시된 23부제로 보은군과 회인군이 되었다. 『신구대조』에 의하면 1914년 두 지역이 통합되어 보은군이 되었으며 10개 면 178개 리를 관할하였다. 보은은 삼한 시대에 마한에 속했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 지대였다. 삼년산성은 470년(신라 자비왕 13) 신라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하여 보은에 성을 축조하였는데 그 축조기간이 3년이 걸렸다 하여 이렇게 불리는 것이며, 오정산에 있다 하여 일명 오정산성(烏頂山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지리지』(상주)에 "삼년군은 본시 삼년산군(三年山郡)으로서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은 보령군(保齡郡)이 되었다."라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즉 502년(신라 지증왕 3)에 주현제를 실시하면서 삼년산군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중국의 2자식 한자 지명인 삼년군(三年郡)으로 개명하였다. 『고려사지리지』(경상도 상주목 보령군)에 "보령군(保令郡)은 원래 신라의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이 삼년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는 보령군(保齡郡)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940년(고려 태조 23)에 삼산군을 보령군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태종 6년(1406)에 보령현(保寧縣)과 음이 서로 비슷하다고 하여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현감을 삼았다. 태종 13년(1413)에 경상도에서 본도로 예속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이며 이와 유사한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도 확인된다. 이를 통해 당시 충청우도의 '보령'과 음이 같아 혼동이 되므로 현재의 명칭인 '보은'으로 개칭한 사실과 1413년에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보은의 일명으로 삼년산[保齡], 삼산[報令], 보령(保令)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보은현은 8개 면을 관할했다는 내용이 『동국여지지』에 보이며, 『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는 사각면 · 속리면 · 왕래면 · 탄부면 · 마로면 · 삼승면 · 서니면 · 수한면 · 내북면 · 외북면의 10면 206리를 관할하였다. 조선 시대 회인현은 『삼국사기지리지』(웅주)에 "매곡현(昧谷縣)은 본시 백제의 미곡현(未谷縣)으로 경덕왕이(매곡으로) 개명하였으며, 지금의 회인현이다."라는 관련기록이 처음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