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북면(內北面)
세촌리(世村里)
1. 위치
면적 2.98㎦, 인구 26가구 65명(1999년 말).
면 소재지로부터 서남쪽 10㎞ 지점으로 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동은 신궁리(新宮里), 서와 남은 회북면(懷北面), 북은 용수리(龍壽里)와 접하고 있음.
2. 연혁
본래 회인군(懷仁郡) 동면(東面)지역으로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世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세촌리(世村里)라 해서 회북면(懷北面)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행정구역변경에 의하여 내북면(內北面)에 편입되었음.
3. 자연마을
- 느리-울(世村里)[마을]본래 이름은 ‘누리울’이 변하여 ‘느리울’이 되었음. ‘누리’는 ‘세상(世上)의 옛말임.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한다.
- 바깥-누리울[마을] 세촌리의 중심마을
- 세-촌(世村)[마을] → 느리울
- 안-느리울[마을] 바깥느리울 동북쪽 안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장-골[골] 바깥느리울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개경주-골[골] 바깥느리울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깨밭-골[골] 안느리울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깨 농사가 잘 된다고 함.
- 넌드랑-골[골] 바깥느리울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느리-골[골] 바깥느리울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 입구가 됨.
- 말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이 아래로 드리운 끝부분에 있는 골짜기를 뜻함.
- 먹-골[골]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회북면(懷北面) 갈티리(葛峙里)로 넘어가는 길목이 됨.
- 벼락-재[골] 바깥느리울 북쪽에 벼락재 밑에 있는 골짜기.
- 벼락-재[산] 바깥느리울 북쪽에 있는 산(419m), '별‘은 ’벼랑‘의 고어로 큰 벼랑을 이룬 산을 말함. 옛회인 현감이 가물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함.
- 분모-골[골] 바깥느리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불무-골(治洞)[골]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쇠경-골[골] 바깥느리울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쇠를 구워냈던 흔적이 있다고 함. ‘쇠군골’이 ‘쇠근골’로 변했다가 ‘쇠경골’이 되었음.
- 아랫-골[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안-산[산]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산 (339m). 마을 맞음편에 있음. ‘안산’은 바로 앞에있는 작은 산을 뜻함.
- 오매기-골[골] 바깥느리울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오봉-산(五峯山)[산] 바깥느리울 남쪽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다섯임. 회북면 갈티리와 경계가 됨.
- 작은-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장구-목이[고개] 바깥느리울 큰자라기를 거쳐 쌍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구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함.
- 큰-자라기[골] 바깥느리울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하-고개[들] 바깥느리울 동쪽. 하고개 아래 있는 들.
- 항-고개[고개] 바깥느리울에서 회북면 고석리로 넘어가는 고개. ‘한고개’가 변하여 ‘항고개’가 되었음. ‘한’은 ‘큰’의 옛말로 ‘큰고개’를 뜻함.
5. 문화유적
- 민속
- 산신제 : 안느리울 북족 구룡산턱에 있는 산제당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알 산신제를 거행한 후 상 . 하에 수살제를 지내고 있음.
- 성황당 : 항고개 마루에 있음.
6. 집성
경주 김씨(慶州 金氏) 장암공(壯庵公)후손 5호가 살고 있으며, 안느리울에 안동 김씨(安東 金氏)가 집성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2호만 있음.
7. 산업
담배, 고추, 감, 밤
8. 기타
1995년 마을 자랑비와 이장 김홍래 공적비 (里長 金洪來 功績碑)를 바깥느리울 입구에 건립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