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면(馬老面)
갈평리(葛坪里)
1. 위치
면적 4.71㎢, 인구 91가구 224명(1999년말) 본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적암리(적암리), 서는 수문리(水門里), 남은 송현리(松峴里), 북은 외속리면(外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의 마로면 지역으로서 칡이 많았던 벌판이었으므로 갈벌 또는 갈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新垈)를 병합하여 갈평리라 하였다.
3. 자연마을
- 새터(新垈) : 갈평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안말 : 갈평 안쪽에 있는 마을.
4. 기타지명
- 가래실 : 안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가 가래같이 생겼다고 함.
- 갈평소류지 : 증산골 남쪽에 있는 소류지
- 개동이산 : 안말 서쪽에 있는 산으로 등잔걸이처럼 생겼음.
- 구렁이 들 : 진동 서쪽의 들로 물 많고 토질이 좋다고 함.
- 기차바우 : 구병산 아래에 있는 바위가 기차모양을 함.
- 다락논골 : 안말 서쪽에 있는 들로 다락논이 많은 골짜기.
- 달밤들 : 새터 동쪽 들로 달밤에도 가뭄이 든다고 함.
- 도롱골 : 도마티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도마티 : 갈평에서 적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도마같이 생겼음.
- 바른골: 안말에서 구병산을 향하여 오른쪽에 있는 큰 골짜기.
- 배너미고개(문바위) : 바른골에서 내속리면 삼가저수지로 넘어가는 고개. 천지개벽 당시 배가넘어다녔다 하여 배너머고개라고 하고 바위가 문 같이 생겼다 하여 문바위 고개라고도 함.
- 벼까리봉산 : 구봉산의 일환으로 노적같이 생겼음.
- 복호등 : 구봉산의 한 봉우리. 범이 업드린 모양을 함.
- 시양골 : 전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절이 있어 시앙을 드리러 온 사람들이 머물렀다고 함.
- 어딩이골 : 바른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컴컴하여 어둡다 함.
- 오야골 : 안말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얏나무가 있었다 함.
- 와우산(땅재) : 안말 동쪽에 있는 산으로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 하며, 김해 김씨 제당이 있음.
- 절골 : 전에는 절이 있었다 함.
- 증산골 : 안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 시루 모양같이 생겼음.
- 진바닥등 : 땅재 남쪽에 있는 들. 땅이 질다고 함.
- 질기너머고개 : 새터에서 적암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소의 질마같다 하여 붙인 이름.
- 큰골 : 개미덕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호랑이묘 : 안말 서북쪽에 있는 묘. 전에 김해김씨의 묘터를 잡아주었다는 호랑이를 이곳에 묻었다고 함.
5. 문화유적
- 사모각(師慕閣)
갈평리에 있는 비지정 문화재, 김해인 해사 김정배(海史 金鼎培)의 문하생들이 스승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81년에 건립하였음.
- 영모재(永慕齋)
갈평리에 있는 김해김씨 소유의 비지정 문화재 병산 김수기( 金守起)가 그의 아버지인 통정부군 이직(以直)을 장사지내고 3년동안 시묘하던 곳으로 그의 9대손인 정배(鼎培)가 그 조상의 효성을 사모하여 영원을 기리고자 친척들과 더불어 창건한 것이다.
- 정수암지(晶水庵址)
갈평리 13번지 터, 속칭 절골이 있는 절터. 창건 연대를 알 수 없고 절터가 3개소나 있는데 큰절, 중간절, 안절이라 불렀다는데 흔적만 남아 있다. 절터의 면적은 큰절이 300㎡, 중간절터가 150㎡, 안절터100㎡, 사찰 주위를 석출으로 둘러 약 30m 정도이고, 높이가 1.5m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 사찰에 빈대가 생기자 주지가 “불도를 닦는 우리가 생명이 있는 빈대를 어찌 죽일수 있는가?” 하고 그 곳을 떠나자 다른 승려들마저 모두 떠나 폐찰되었다고 전해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