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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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속리면(外俗里面)

하개리(下開里)

1. 위치

면적 1.1㎢, 46가구 135명(1999년말), 본면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은 봉비리(鳳飛里), 서는 장내리(帳內里), 남은 황곡리(荒谷里), 북은 서원리(書院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개안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개안 또는 하개안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점말을 병합하여 하개리(下開里)라 하고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개안마을 : 점말 남쪽에 있으며 냇물 갈림 안쪽에 있어 개안이다.
  • 아래개안 :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보청천에 합수하는 삼가천이 장안에 이르러 양 갈래로 동남, 서남쪽으로 분류되어 흐르고 그 가운데 섬을 이루고 있는데 장안 밑에서 갈라졌다고 하여 하개안 또는 개안이라고도 함.
  • 점말 : 등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로 옹기점이 있어 생긴 이름
  • 하개안(下開安) : 아래개안

4. 기타지명

  • 등고개 : 개안에서 봉비리 새비랭이로 가는 고개로 소의 등 같이 생겼음.
  • 선창소 : 개안 남쪽에 있는 소. 비결파에 의거 전국 10승지의 하나로 송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먼저 창건하였다 하여 선창(先唱)이라 하였음. 또한 신정훈이 집을 지을 때 집자리가 배의 형국이라서 배를 댈 곳이 있어야 한다 하여 이곳에 배를 대는 곳이라 하여 선창이라 불렀다고 한다.
  • 하개 공동묘지 : 개안 북쪽에 있는 공동 묘지

5. 문화유적

  • 선병국 고가(宣炳國 古家)
    하개리에 있는 선정훈이 지은 한옥, 조선시대 양반가의 전형적인 건축물로 1920년 경에 지음. 대지 1만여 평에 위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 여섯 동의 주건물과 부속 건물로 이루어진 99칸집이다. 대문은 삼문으로 되어 있고 담장은 토속혼축으로 와즙이며, 주건물 사이에는 담장이 있고 일각문을 내었다. 안채와 사랑채는 석조기간 위에 전면 7칸의 공(工)자형 목조와 와가팔작지붕이다. 사당은 ㄱ자형으로 팔작집이고 행랑채는 J자형 팔작집이다. 대문앞에는 선씨(宣氏)의 선조 선처흠(宣處欽)과 그의 부인 경주 김씨의 효열각이 있는데 익공(翼工) 팔작집이며, 1998년 수해로 담장이 거의 파괴되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영화 촬영 장소로도 유명했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 13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 선병묵 고가(宣炳黙 古家)
    1940년대에 지은 건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전통적인 가옥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옆면 2칸 전・후퇴, 사랑채는 정면 4칸반, 옆면 2칸 전・후퇴를 두었다. 전체적으로 간살을 넓게 잡았고 특히 옆면에는 몸체 2칸에 전・후퇴를 두어 방을 크게Rnalf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꺽인 툇마루를 두어 통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보의 방향으로 규모가 커지고 쵯마루의 기능이 확대되는 등 1940년대의 전통적인 기법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청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 4호로 지정되었다.
  • 선병우 고가(宣炳禹 古家)
    안채, 안사랑채, 바깥사랑채, 행랑채 등 전통적인 가옥형태를 고루 갖춘 1940년대에 지은 건물이다. 안채, 사랑채 등 각 동이 서로 독립해 있어 남부지방의 가옥배치와 유사하며 간살을 넓게 잡고 있는점이 특색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옆면 1칸에 전・후퇴간을 두었으며, 시멘트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네모나게 가공한 주춧돌을 놓고민흘림을 한 네모기둥을 세웠다. 1고주 7량으로 일반주택으로는 큰 규모이나 고주와 평주 사이에 굽어진 우미량을 설치하였다.
    1940년대 충북지방에서 전통건축기법이 계승되고 있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있다. 충청북도 지방문화재 제 5호로 지정되었다.

6. 산업

  • 담배, 고추, 쌀, 약초

7. 기타

1991년 세강터 마을 입구에 마을 자랑비를 세웠음. 옛북암초등학교 청소년 야영장이 개설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