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리면(外俗里面)
봉비리(鳳飛里)
1. 위치
면적 3.58㎢, 101가구 314명(1999년말). 본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은 불목리(佛目里), 서는 하개리(下開里), 남은 탄부면(炭釜面) 북은 서원리(書院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새비랭이 또는 봉비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비리라 하고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새비랭이(沙飛龍) : 봉비리의 중심 마을로 옛날 구병산에 나무가 무성하고 들에는 잡초가 우거져 철새들이 모여 들었는데 오림미(梧林)숲에는 봉황 한쌍이 살고 있어 아침이면 날아 황곡빈경산에서 놀고 밤이면 오리미 숲으로 날아왔다고 해서 사비랭이 라고 했다고 함. 또한 마을 뒤, 꼴미산(花山)이 봉황이 나는 형상이라 하여 새비랭이가 되고, 마을 사람들이 새들이 날아가 버리면 마을에 흉사가 생긴다고 하여 봉황이 깃들 수 있는 오림(梧林)을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 오리미(梧林) : 오동나무 숲이 있었고, 꼴미산(花山)에는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봉비가 되고, 봉황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도록 오동나무를 심고하여 오리미라고도 함.
4. 기타지명
- 갈기골 : 새비랭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 갱변 : 냇가에 있는 논으로 전에는 마을이었으나 79년 농지정리로 논으로 변함.
- 곰동골 : 보도골 바탕 밑에 있는 골짜기.
- 구병산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 봉우리가 아홉 개로 절경이며, 속리산과 연계하여 “충북알프스산”으로 개발되어 가고 있음. 남쪽 산허리에는 “보은 위성중계소”가 있음.
- 굴골 : 새바랭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 골이 있음.
- 까치실고개 : 새비랭이에서 불목리로 넘어가는 고개. 일명‘도마티’라고도 하며, 옛날 부자들이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으면, 유난히 까치들이 많이 날았다는 전설.
- 꼴미산(花山) : 새비랭이 뒤에 있는 산으로 산꽃들이 많았음.
- 둥고개 : 새비랭이에서 하개리 개안으로 넘어가는 고개.
- 모래봉(沙峰)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산으로 심방골 앞에 있음. 산 정상에는 묘가 있는데 떼가 살지 않는다고 함.
- 보도골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양물탕 밑에 있음.
- 보도골 버덩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버덩으로 나무꾼 들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함.
- 불당골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골에서 등성이를 넘어 옛날에는 절이 있었는데 하도 빈대가 많아 스님이 떠나자 폐사되었다고 함.
- 불당골 굴 : 불당골 안쪽에 있는 구리 방만하다고 함.
- 사양골 : 새비랭이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서낭골이 변한 것으로, 옛날 짐승을 잡던 사냥터가 있음.
- 산제당 : 승지골에 있는 산제당으로 정월 보름날 산제를 올림.
- 서너실 고개 : 새비랭이에서 불목리 불목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작은 고개가 서너 개 있다 하여 ‘서너실고개’가 됨.
- 승지골 : 하평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는 서낭당이 있어 제사를 지냈다고 함.
- 신바위 : 사양골 중간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 사냥을 하기 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함.
- 심방골 : 새비랭이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골 밑에 있으며, 지형이 깊고 방처럼 아늑하다고 함.
- 약물탕 음달사 : 새비랭이 동쪽 구병산 정상 밑에 있는 산봉우리. 정상에 큰 바위굴이 있는데 굴 속에서 약물이 나온다고 함.
- 작은문바위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고개로 서원리 안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문처럼 생겼음.
- 장사평 : 진사래 들을 말함. 사래는 이랑의 고어임
- 절골 : 새비랭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구병산으로 이어진다.
- 진사래 보 : 하개리와 봉비리 앞들에 있는 보.
5. 기타
- 봉비리의 8경
1. 오림명월 : 봉황은 오동나무 숲에만 앉는다고 하는 우거진 숲
2. 쌍용반송 : 소나무 형상이 마치 두 용이 서린 것과 같은 소나무
3. 화산향풍 :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산에 향기로운 바람이 분다.
4. 비봉기소 : 각종 새들이 날아서 저들의 둥지로 찾아든다.
5. 진사래보 : 하개리와 봉비리 앞들에 있는 보.
6. 구병기운 : 아름다운 구병산의 구름이 서리어 있고.
7. 빈경낙조 : 빈경산에서 봉황이 저녁 노을에 놀고.
8. 금개조어 : 앞 시냇물에서는 태공들이 고기를 낚고 있는 마을이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정경이 있는 마을을 읊음.
6. 전설
조선 정조 때의 일이다. 외속리면 봉비리에 정가묵(鄭可黙)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에 1등으로 합격하여 이름을 날렸으나, 벼슬 길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독서와 산책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마을 앞 수 만평에 이르는 토지가 황무지가 되어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되었으나, 부근의 전답들도 ‘달밤에도 가뭄이 탄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수리시설이 없었다. 이외로 남다른 생각이 있어 ‘삼가천 냇물’을 이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할 것을 결심하였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하여 금강에 흘러가는 삼가천은 오늘날 내속리면 삼가리에 큰 저수지를 막아 유수한 수리시설을 갖춘 냇물이었지만 옛날에는 외속리면 하개리에 이르면 냇물은 모두 자갈속에 스며들어 장마 때가 아니면 좀처럼 물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안 정진사는 약 십리 가량 위로 올라가 외속리면 서원리 북두무니라는 냇물 웅덩이에서부터 냇물 바닥을 파서 하류로 물길을 잡아오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하인들과 동민들을 모두 설득하여 새로운 물길을 찾아 하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개리 마을 아래로 돌로 제방을 쌓고 보를 막았다. 엄청난 양의 물이 고였고 이 물을 이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선각자라 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칭송이 자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보 이름을 ‘진사보’라고 부르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잘 지어 살게 되었다. 사투리로 ‘진사래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