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리면(外俗里面)
장재리(壯才里)
1. 위치
면적 3.83㎢, 52가구 154명(1999년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구인리(求仁里), 서는 오창리(悟倉里), 남은 황곡리(荒谷里), 북은 내속리면(內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표장자(表長者)가 살았으므로 장자불, 또한 장자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재리라 하고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단지바우 : 쌀개목 동쪽의 골짜기로 단지 모양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 대궐터 : 장자불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장재저수지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세조대왕이 신병 치료차 속리산에 오다가 이곳에서 임시로 대궐을 짓고 머물렀다 하여 대궐터가 되었으며, 오늘날 취락구조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은 모두 한옥이 되어 한옥마을이라고도 한다.
- 아랫말 : 독점 입구에 있는 마을.
- 웃말 : 아랫말 위에 있는 마을
- 작은 골 : 독점 북쪽에 있는 마을.
- 장자동(長者洞) : -> 장재리
- 장자불(壯才 壯者洞) : 표씨가 종쟁이들 집을 짓고 대궐터 동쪽 골짜기에서 독을 구워 생활 할 때 표씨(表氏) 큰 아들은 개울 건너에 살아 장자울 이라 함.
4. 기타지명
- 된비얄 : 웃말 동쪽, 속날 위에 있는 비탈로 매우 가파른 비탈임.
- 마당바우 : 한각골 너머에 있는 바위로 마당처럼 넓음.
- 말티고개(말티재, 馬峙, 薄石峴, 馬峴礴石) : 장재리에서 내속리면 갈목리로 가는 고개로 옛날에 세조대왕이 말을 타고 지나갔다고 하여 박석티라고도 하는데, 세조대왕이 고개를 넘을 때, 돌을 깔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 밀밭골 : 바랑골 앞쪽 끝에 있는 골짜기.
- 바람골 : 장재 저수지 안쪽에 있는 골짜기.
- 바른골 : 독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에서 바로 보인다고 하여 바른골이라고 함.
- 박석지 : 장재 저수지를 말함.
- 버구리 산 : 대궐터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일명 시루봉이라고도 하며, 바구리를 엎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바구리산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버구리산이 되었음.
- 버구리산골 : 말티고개 올라가는 길목에서 오른쪽으로 있는 가장 높은 골짜기로 범이 굴러죽었다고 함. 범굴이 있음.
- 봉래산 : 진서들과 쌀개봉 사이에 있는 산임.
- 북바우 : 대궐터 건너편에 있는 바위, 세조가 대궐터에 행궁(행궁)을 짓고 묵을 때 앞산에 매단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전함.
- 살개목 : 독점 동쪽에 있는 골짜기, 디딜방아의 쌀개처럼 생겼다고 함.
- 샘건너 : 웃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샘 건너편에 있음.
- 소실티고개 : 대궐터에서 내속리면 중판으로 넘어가는 고개.
- 소실티골 : 장재저수지 왼쪽으로 세 번째 골짜기. 소실티 고개
- 속날 : 말티고개에서 웃말 동쪽으로 내려온 산등성이.
- 수통골 : 웃말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 샘 건너 위쪽으로 술통 같이 생겼다고 함.
- 시악시골 : 소실티골 위에 있는 골짜기. 용이 승천한 구멍이 있다 함.
- 아래증골 : 장재 저수지 왼쪽에 있는 첫 번째 골짜기. 전에 점(점)이 있었다고 함.
- 아홉 모랭이 : 종쟁이들 끝에 있는 거리.
- 약물탱이 : 한각골 남쪽에 있는 약물탕.
- 오곰장 : 독점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곰 다섯 마리가 놀았다고 함.
- 웃 증골 : 장재 저수지 왼쪽으로 두 번째 골짜기.
- 작은 피아골 : 큰 피아골 밑에 있는 골짜기.
- 장재 저수지(壯才貯水池) : 장자울 북쪽에 있는 못, 1957년에 만듬. 박석티 밑에 있다 하여 박석지라 함.
- 점골 : 점동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독을 구워 팔 때 이곳에서 독을 파는 점을 쳤다고 함.
- 점동산 : 대궐터 동북쪽에 있는 산. 점골 옆에 있음.
- 종쟁이들 : 독점 마을 앞 들. 세조대왕이 속리산에 행차중 이 마을에 머물게 되어 아침시간을 알리는 북을 들 앞 바위에서 쳤다 하여 부른 이름.
- 진서들 : 쌀개목 밑에 있는 골짜기. 골이 길다고 함.
- 큰질 고개 : 웃말에서 약물탕으로 넘어가는 고개.
- 큰 피아골 : 비구리 산골 밑에 있는 골짜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 째 골짜기.
- 피아골: 말티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약초를 캐던 사람이 산삼을 캐서 배고픈 중에 한입 먹었더니 산삼에서 피가 났다 하여 피아골 이라 함.
- 한각골 : 한각골 고개너머, 약물탕 밑에 있는 골짜기. 외속리면 구인까지 이어진다고 함.
5. 전설
- 구름처럼 사라진 노승
세조의 행렬이 보은읍을 거쳐 대야리 앞을 지나 속리산쪽으로 나지막한 고개를 막 올라 섰을때였다 행렬 앞에 한 늙은 중이 나타나 세조대왕 앞에 합장 제례를 드린 후 “대왕마마! 이 고개 넘어 오봉산이 있사온데 이 산 아래에 행궁(行宮-임금이 여행길에 묵는 별궁)을 지으시고 오고 가실 때 쉬어 가소서”하고는 구름처럼 사라졌다. 세조는 너무나 신기하여 노승이 말한대로 행궁을 짓게 하고 행궁 앞산에 북을 달아 아침 저녁으로 북을 쳐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도록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노승이 나타났던 고개를 미륵불이 변신하여 나타난곳이라 하여 “미륵댕이 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오봉산 아래 행궁을 지었던 자리를 “대궐터” 그리고 북을 달았던 곳을 “북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미륵댕이는 현재 통일탑이 서 있는 곳에서 속리산쪽으로 가는 작은 고개를 말하는 것이고 대궐터란 장재저수지 아래 현재 한옥 집단 취락구조 마을 이름이다.
- 굽이 굽이 열두 굽이 말티고개
보은을 지나 속리산으로 가면 해발 800미터의 꼬불꼬불 열두굽이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을 말티고개라 부른다.
속리산의 관문이라 하는 이 고개는 처음 고려 태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올 때, 닭은 길이라 하며 또 조선 세조대왕께서 올 때 얇은 돌을 깔았다고 하는데 1966년 도로 포장 공사를 할 때 옛날의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이름으로 “박석재”라고도 부른다.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오실 때 외속리면 장재리에서 고갯길을 연으로 넘을 수 없어 말을 타고 고개를 넘고 나서 내속림련 갈목리 고개 밑 부락에서부터 다시 연을 바꾸어 탔다고 하여 “말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966년 말티재를 포장한 후, 이를 기념하는 비를 세웠다.
- 효자이야기
옛날 독점에 한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지성으로 어머니를 모시는대도 어머니는 시름 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생명이 경각에 이르게 되었다. 어머니 곁에서 뜬 눈으로 병구환을 하던 아들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 내일 아침 말티고개 밑에 가면 한 중이 지나갈 것이니, 그를 붙잡고 어머니를 살려달라 사정하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말티고개 밑에 이르니 바랑을 짊어지고 막 고개를 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효자는 그 중의팔을 붙잡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그 중은 그의 청을 들은척도 않고 손을 뿌리치고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 때 어떻게 세게 중의 팔을 잡았는지 중의 팔이 떨어지게 되었다 팔이 떨어진 중은 허우적거리며 고개를 오르다 지쳤는지 짊어지고 있던 바랑을 벗어 던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고 말았다.
효자는 한동안 넋을 잃고 중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잡고 있던 중의 팔을 내려다 보니 이것은 사람의 팔이 아니라 산삼이었다. 기쁜 나머지 단숨에 집으로 달려와 그 산삼을 달여 어머니께 드렸더니 병은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중이 바랑을 벗어 놓은 골짜기를 “바랑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