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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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속리면(外俗里面)

오창리(悟倉里)

1. 위치

면적 1.97㎢, 71가구 235명(1999년말) 본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장재리(壯才里), 그리고 보은읍(報恩邑)에 둘러싸여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속리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심리(梧心里), 사창리(士倉里), 오용리(五龍里)를 병합하여 오심과 사창의 이름을 따서 오창리(悟倉里)라 하고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새창이 마을 : 장자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세조께서 속리산에 가실 때 대궐터에서 야식을 하시는데 세조를 모시는 병정들이 이곳에 묵어서 세창이라하던 것이 새창이로 변했음.
  • 암소바우 : 장자불 남쪽에 있는 마을 모롱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바위 위에 암소 발자국과 같은 자국이 있다 함.
  • 오심불(悟心村) : 오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세조대왕께서 명상에 잠겨 있다가, 속리산에서 나오고 있는 도중에 지금의 오창 1리에 이르러 비로소 깨달았다고 함.
  • 장자불(장자촌, 장자울) : 오심이 남쪽에 있는 현재는 오창 2리가 된다. 옛날 표씨가 독점마을에서 독을 구어 생활할 때, 표씨의 큰아들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함.

4. 기타지명

  • 구수고개 : 장자불에서 보은읍 길상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소의 구유같이 생겼다고 함. 새쟁이 들에 물을 대기 위하여 수로 공사를 할 때, 없어졌음. 오창 2리에 있었으며 장자울 또한 장자불 독굽기 등으로 불리움.
  • 담안들논 : 대궐터 앞에 있는 들. 모두 논으로 되었음.
  • 동녘고개 : 오심이에서 대궐터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승고개 왼쪽이 됨.
  • 목고개 : 오심이에서 장자불로 넘어가는 고개. 장승고개 오른쪽으로 이여송 장군이 세 고개의 맥을 끊어 놓았다는 전설.
  • 미륵댕이 고개 : 보은읍 대야리에서 외속리면 오창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가 시작되는 곳에 통일탑(말티)휴게소가 있음.
  • 새창이 들 : 구인리와 오창 2리 사이로 새로 개간된 들임.
  • 수림이재 : 오창에서 보은으로 가는 고개로 나무가 울창했다.
  • 외뎅이골 : 윗증골에서 소실티 목골 사이에 매복되었던 병사들과 교전을 하게 됨. 당시 세조가 속리산으로 가는 도중 대궐터에 머물게 되자 단종을 옹호하던 병사들이 이곳에 매복하여 있다가 발각되어 세조는 장안으로 돌아 서원 뒷산인 희넘이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게 되어 무사하였으나, 단종을 옹호하던 세력들은 이곳에서 교전하여 전멸되었다고 전하고 있음.
  • 장승배기 : 오심이에서 대궐터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는 높았으나 도로 확장으로 낮아짐. 이여송이 산새가 하도 좋아서 인재가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장승배기와 목고개, 동녘고개를 잘랐다고 함.
  • 저녁골 : 오심이 서쪽에 있는 긴 들, 세조께서 대궐터에 묵으실 때 이곳의 쌀로 저녁을 지어 드렸다고 함.

5. 문화유적

  • 이정 묘비(李晶 墓碑)
    조선 인조 때 은사(隱士) 예안인(禮安人), 송제 이정(李晶)의 묘비로 비문은 공조참판 윤창섭이 지었음. 마을 입구에 예안 이(李)씨 세거비가 있음.
  • 추원각(追遠閣)
    오창리에 있는 예안 이씨 종증 소유의 전면 2칸, 측면 1칸의 목조 와즙 비지정 문화재, 예안 이씨의 선대 5위를 춘추로 제사 지내기 위하여 송곡(松谷)에 비를 세웠다가 194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운 것으로 2칸 중 1칸은 세종대왕 유서판(諭書板)을 걸었고, 1칸은 익양공(翼襄公) 이천(李薦)의 실기비(實記碑)를 세웠고 대로변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