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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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북면(懷北面)

쌍암리(雙岩里)

1. 위치

면적 6,32㎢m 인구 59가구 155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6㎞ 지점으로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동은 내북면(內北面), 서는 신문리(新門里), 남은 고석리(高石里), 북은 청원군(淸原郡)과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회인구(懷仁郡) 동면(東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개동(草介洞), 능암리(能岩里), 계암리(桂岩里)를 병합하여 능암과 계암의 이름을 쌍암리(雙岩里)라 해서 회북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능-암(能岩)[마을] 쌍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고려때 웅암사(熊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이 없어지고 마을이 생겼다 하여 웅(熊)자에서 네 점을 떼어 능(能)암이라 하였다 함. 현재 쌍암 2리 마을임. 윗말, 중뜸, 아앳말로 구분되여 있음.
  • 지-바우(桂岩,게바우)[마을] 능암 서남쪽에 있는 마을. 계목과 큰 바위가 있음. 쌍암 1리 마을. 웃말과 아랫말로 구분되여 있음.
  • 초갯-골(草介洞)[마을] 능암 동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풀이 무성하였다 함. 쌍암3리 마을.

4. 기타지명

  • 가운데-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중간에 있음.
  • 갓-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 오른쪽에 있음.
  • 개-골[골] 능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개구리가 많아 ‘개구리골’이라 하던 것이 변한 것임.
  • 개골-고개[고개] 능암에서 지바우로 넘어가는 고개.
  • 고-바우(熊岩)[바위] 능암 남쪽에 있는 바위. 쌍암지(雙岩池) 축조로 수몰되어 일부만 남아있음.
  • 고사리밭-양달[골] 동절 안에 있는 골짜기 버드리고개 밑에서 오른쪽 양달에 있는 골짜기.
  • 고염나무-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고개 북쪽에 있으며 고염나무가 많았다고 함.
  • 국수-봉[산] 능암 북쪽에 있는 산. 국수발처럼 골이 많음.
  • 꽃-봉(花峯:330m)[산] 능암 북쪽에 있는 산. 능암마을의 주산(主算)이라함.
  • 꽃봉-골[골] 초갯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꽃봉 북쪽에 있음.
  • 나무신장-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 왼쪽에 있음.
  • 너븐-골[골] 동절안에 있는 골짜기로 버드리고개에서 오른쪽에 있음.
  • 덕-고개[고개] 지바우에서 신문리로 넘어가는 고개. 큰고개, 작은고개가 이어 있어서 덕고개라 부름.
  • 도장-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동절-골[골] 능암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버드리고개 밑까지 이어짐.
  • 마늘-봉[산] 지바우 동쪽에 있는 산. 산형이 마늘쪽처럼 생겼음.
  • 말-봉[산] 능암 서남쪽에 있는 산. 산형이 말처럼 생겼음.
  • 마당-목(마당메기)[골] 동절골내에 있는 골짜기. 버드리고개 오른쪽에 있음.
  • 밀개-봉[산] 능암 동남쪽에 있는 산. 산봉우리가 둥글고 사람이 밀개로 밀어붙였다고 함.
  • 버드리-고개[고개] 쌍암에서 내북면 법주리로 넘어가는 고개
  • 분터-골[들] 지바우 남쪽 마을 입구에 있는 들
  • 사랑-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산재당-골[골] 초갯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사랑골 아래에 있으며 산제당이 있었음.
  • 상여-바우(행상바우)[바위] 초갯골 동쪽에 있는 바위. 상여처럼 생겼다 함.
  • 서낭당-고개[고개] 능암에서 초갯골로 넘어가는 고개. 성황당이 있었음.
  • 서낭댕이-골[골] 능암 남쪽에 있는 골짜기. 능암에서 지바우로 가는 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로 위에 성황당이 있었음.
  • 서절-골[골] 능암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동절골 중간지점에서 다시 갈라져 동북쪽으로 뻗은 골짜기로 서절(西寺)가 있었다고 함.
  • 새터-고개[고개] 쌍암에서 법주리로 가는 옛길에 있는 고개
  • 새터-골[골] 초갯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터가 있었음.
  • 생개-골[골] 초갯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셤-티[골] 능암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셤-티(鳥峙)[고개] 능암 서북쪽에 있는 고개. 청주장을 보러 다닐 때 넘어다녔다 하여 ‘장고개’라고도 부르고 있음.
  • 쌍암-지(雙岩池)[저수지] 지바우와 능암 사이에 있는 저수지. 1984년 완공된 저수지로 몽리면적 145.8㏊임.
  • 쓴배나무-골[골] 초개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 왼쪽에 있음.
  • 아랫-들[들] 지바우 남쪽에 있는 들. 쌍암 저수지 아래에 있음.
  • 어딩이-골[골] 능암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셤티골 반대편에 있으며 숲이 우거져 대낮에도 어두워 ‘어둔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오매기-골[골] 지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짧다고 함.
  • 용-둠벙[소] 능암 북쪽에 있는 웅덩이. 용이 승천한 곳이라 함.
  • 작은-오매기[골] 지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큰 오매기 아래에 있음.
  • 장-고개[고개] 능암에서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로 넘어가는 고개. 청주장을 보러 다니던 길임.
  • 장수-굴(雙岩石窟,龍湫, 굴재)[굴] 초개골에서 내북면 법주리로 넘어가는 고개길 왼쪽에 있는 석회암굴. 용이 살았다고도 하며 장수가 살았다고도 함. 굴 입구에서 불을 때면 속리산 문장대로 연기가 나온다고 함.
  • 장자-봉(長子峯)[산] 능암 서쪽에 있는 산. 쌍암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높이 586m.
  • 좁은-굴멍[골] 동절안에 있는 골짜기. 버드리고개 밑에서 오른쪽임.
  • 주지미-골[골] 동절내에 있는 골짜기. 양달편에 있음.
  • 중방-바우[바위] 능암 서쪽에 있는 바위. 중방같이 생겼다 함.
  • 중방바우-골[골] 중방바우가 있는 골짜기.
  • 지니미-골[골] 능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국수봉 바른 쪽에 있는 골짜기로 진해이씨 선대 산소가 있어 ‘진이메’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지댕이-골[골] 능암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깊다고 ‘긴댕이’라 부르던 것이 변한 것임.
  • 지찌반날-골[골] 초갯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골에 딸린 골짜기임.
  • 진선반날-골[골] 초갯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골에 딸린 골로 지찌반날골 아래에 있음.
  • 참남-봉[산] 능암 남쪽에 있는 산. 높이 272m로 정이품송을 닮은 소나무가 있음.
  • 큰-오매기[골] 지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작은 오매기 위에 있음.
  • 평풍-바우[바위] 버드리고개 밑에서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 병풍을 친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음.
  • 황계-봉[산] 지바위 서북쪽에 있는 산. 높이 472m. 황계포란형이라 함.

5. 문화유적

  • 웅암사지(熊岩寺址)
    쌍암리 산 54번지의 국수봉 남동쪽에 있는 절터. 능암마을에서 내북면 법주리로 넘어가는 동절골의 서편 도로변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밭으로 되어있고 일부는 도로확장으로 없어졌다. 웅암사는 옛 지리지에 구룡산에 있다고 기록되여 있고 여지도서에는 구룡산에 있었는데 유허만 남아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5세기까지는 존재하였다가 조선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려시대에 웅암사가 있었는데 그 절의 승려들의 행패가 심하여 소전 태조가 절을 없애고 절이름 웅(熊)자를 능(能)자로 고쳐 마을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웅암사는 동쪽에 있다하여 동절(東寺)라 부르고 그 서쪽 산중턱에 있는 절은 서절(西寺)이라 불렀다고 하며 일제시대에 절을 모두 헐고 서절의 목재는 회인객사를 짓는데 사용하였다 한다. 서절터에 1965년 허각(許角)이라는 사람이 새로 절을 짓고 보덕사(普德寺)라 하였는데 그마저 폐사되었다. 면적은 약 1,000평정도가 된다.
  • 권몽남효자문지(權夢男孝子門址)
    1882년 효자정문을 초갯골에 세웠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6. 집성

  • 동래정씨(東來鄭氏)
    쌍암리는 처음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들어와 터전을 잡은 곳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동래 정씨가 입향하여 20여호가 거주함.

7. 산업

사과, 배, 호도, 마을, 고추, 담배, 축산.


8. 전설

  • 장수굴
    조성 선조 때 일이다.
    이 굴에 장수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찌나 힘이 센지 큰 고목 나무를 한손으로 뿌리채 뽑았으며 한번에 큰 돼지 한 마리와 술 세 동이나 먹었으나 그렇다고 특출한 무예는 없었다. 매일 열자(약 3m)나 되는 긴 창을 들고 다녔으나 사냥조차 제대로 못하였으며 얼마나 게으른지 한번 잠이 들면 석달 열흘간(100일)이나 쿨쿨 잠만 잤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졸지장의 명색만 장수”라고 비웃었으며 혹심한 사람은 “미치광이 장수”라고 놀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 내색도 않고 소같이 많이 먹고 배가 부르면 다시 굴안에 들어가 세상 모르게 잠만 잤다. 어쩌다 그가 마을 앞에 나타나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그의 뒤를 따라 가며 “미치광이 장수”라고 놀려 주었지만 그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침내 왜놈이 우리 나라를 쳐들어와 이 곳 마을까지 당도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허겁지겁 왜병을 피하여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 때까지 굴안에서 잠을 자던 장수가 창을 들고 나타났다. 장수는 한 손에 긴 창을 들고 왜병을 상대하여 싸우기 시작했는데 빠르기가 바람같았다. 한 손으로 왜병 두 명을 한꺼번에 번쩍들어 집어 던지는가 하면 한 창에 적병을 십 명씩이나 곶감끼듯 찔러 버렸다. 왜적은 감히 당하지 못하고 뿔뿔히 도망갔다. 장수는 그제서야 다시 술과 고기를 청하여 배불리 먹고
    “나는 이제 속리산 문장대로 간다”하면서 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 세월이 1년이 지나도록 장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궁금하여 굴속으로 들어가 장수를 찾았으나 워낙 굴이 깊어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굴 속에 불을 떼면 연기를 못참고 장수가 굴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믿고 나무를 때기 시작했다. 아무리 며칠을 두고 불을 때었지만 연기가 문장대로 나올 뿐 장수는 영영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굴을 “장수굴”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도 이 곳에 계속하여 불을 때면 속리산 문장대에서 연기가 나온다고 믿게 되었다.

9. 기타

1996년 4월 21일 쌍암 1리(지바우) 마을에 마을자랑비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