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炭釜面)
성지리(城池里)
1. 위치
면적 1.91㎢, 인구 32가구 76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남서쪽 3㎞ 지점으로 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동은 대양리(大陽里), 서는 삼승면(三升面), 남은 마로면(馬老面), 북은 덕동리(德洞里)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報恩郡) 마로면(馬老面)지역으로서 망지 또는 성지(城池)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쌍암리(雙岩里)를 병합하여 성지리(城池里)라 해서 탄부면(炭釜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망-지(綱池)[마을] 마을의 지형이 못에 그물을 친 것 같다 하여 망지라 하였다고 함. 일설에는 기름재에 명당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노승이 묘를 쓰지 못하도록 엄나무 말목 4개를 박고 갔는데 그것이자라 세 아름이 되었는데 그중 세그루가 불에 타나 인업이 비지재를 넘어 간 후 마을이 작아지고 하는 일이 풀리지 않아 망지라 하였다고 함.
- 맞-바우(雙岩)[마을] 망지 북쪽에 있는 마을. 현재는 한 집만 있음.
- 새텃-말(新村)[마을] 망지 서쪽에 있는 마을. 성지리 4개 마을 중 가장 늦게 생겼음.
- 작은-망지[마을] 망지에 딸린 작은 마을. 큰 망지 서쪽에 있음.
- 큰-망지[마을] 망지에 딸린 큰 마을. 성지리의 중심 마을임.
4. 기타지명
- 기름-재[고개] 큰 망지와 작은 망지 사이에 있는 고개. 엄나무 네 그루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 그루만 남아 있음.
- 갈밭-들[들] 맞바우 서쪽에 있는 들. 망지마을 북쪽으로 마을 앞이 됨.
- 골안-골[골] 큰 망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국시기-고개[고개] 큰 망지 북동쪽에 있으며, 대양리로 넘어가는 고개.
- 국시기-골[골] 큰 망지 동북쪽 국시기 고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너른-골[골] 큰 망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 소류지 위로 골안골 동쪽임.
- 덕-골[골] 큰 망지 동남쪽 소류지 위에 있는 골짜기.
- 등투-고개[고개] 큰 망지 동남쪽에 있는 고개. 마로면 오천리로 넘어가는 길목임. 가름재에 있었던 엄나무 세 그루가 불에 탄 후 인업이 이 고개를 거쳐 비지재로 넘어간 후 마을이 작아지고 일이 잘 안된다고 함.
- 매-봉[산] 큰 망지 동쪽에 있는 283미터의 산. 옛날 큰 홍수 때 모두 침수되고 매 한 마리 만큼 남았다고 함. “독수리봉”이라고도 함.
- 모롱[모롱이] 새텃말 북쪽에 있는 모롱이. 망지 사람들이 원남장을 보러 갈 때 다니던 길목임.
- 모롱-들[들] 새텃말 북쪽에 있는 들. 모롱 안쪽에 있음.
- 뭇-터[들] 망지북쪽에 있는 들. 갈밭들 넘어 보청천가에 있음.
- 배선지-골[골] 큰 망지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망지에 100여호가 살고 있을 때 전쟁이 나서 마을 주민 천명이 이곳으로 피난했다가 백명만 살아 나왔다고 함.
- 산지-당[당] 작은 망지 남쪽에 있는 당집. 음력 섣달 초사흩날 부락제를 지냈으나 1973년 이후 중단하고 있음.
- 선지-골[골] 새터말 뒤에 있는 골짜기. 논의 토질이 좋아 한 평을 팔면 들톀의 논 3~4평을 살 정도였다고 하나 지금은 폐답이 되었다고 함.
- 송-골[골] 큰 망지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소류지 위 가운데 골짜기로 덕골과 너른골 사이에 있음.
- 중종-골[골] 작은 망지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마을이 있었다고 함.
- 지안-터[들] 맞바우와 큰 망지 사이에 있는 들. 전에는 인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농경지로 변했음. 모두 선씨, 서씨, 김씨, 장씨의 위토답으로 되어 있어 “귀신답”이라고도 하고 “집넘어들”이라고도부름.
- 호랭이-산태[산] 큰 망지 남쪽 산지당 옆에 있는 산. 사태가 크게 났었는데 그 모양이 멀리서 보면 호랑이와 같이 생겼다고 함. 혀재는 사방사업으로 나무가 울창함. 나무를 심으면 마을이 흥한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나무를 심었으나 조림후 마을이 더작아졌다고 함.
- 황새-바우[바위] 망지에 있는 바위. 황새가 날아가다가 바위에 앉아 쉬어갔다고 함.
5. 산업
쌀
6. 기타
1996년 마을유래비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