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속리면(內俗離面)
백현리(栢峴里)
1. 위치
면적 3.15㎢, 인구 25가구 64명(1999년말), 면 소재지로부터 12㎞ 지점으로 면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동과 남은 북암리(北岩里), 서와 북은 산외면(山外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속리면의 지역으로서 성재 밑이 되므로 잣고개 또는 백현(栢峴)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외면(山外面)의 장갑리(長甲里) 일부를 병합하여 백현리라 하였으며 1947년 속리면이 분할됨에 따라 내속리면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 잣-고개(栢峴)[마을] 조선 숙종 때 이 마을에 살던 효자로 이름 높던 나중경(羅重慶)이 앞산에 잣나무를 심었는데 커서 나무둘레가 세 아름이나 되게 자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잣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4. 기타지명
- 국사-봉(國師峰:535m)[산] 잣고개 서남쪽에 있는 산. 보은읍 내속리면 산외면의 경계가 됨. 천지개벽때 국수가닥 만큼만 남고 모두 물에 묻혔다고 ‘국수봉’이라고 부름.
- 동적-골[골] 잣고개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방두골 안에 있음.
- 딱밭-골[골] 잣고개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문앞-들[들] 잣고개 마을 앞에 있는 들.
- 문앞-보[보] 잣고개 남쪽 북암리 북쪽 속리천에 설치된 보. 문앞들 관개에 이용됨.
- 방두-골[골] 잣고개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적을 방지하기 위한 골짜기라고 ‘방적골’이라고도 부름.
- 불당-터[터] 잣고개 동쪽 방두골에 있는 절터.
- 사랭이-골[골] 잣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새-들(新坪)[들] 잣고개 남쪽 문앞보 앞에 있는 들. 문앞들 보다 뒤에 만들어졌다 함.
- 성-고개(성재)[고개] 잣고개에서 산외면 백서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정하였다는 성이 있다.
- 성-너머[들] 잣고개 북쪽 성고개 너머에 있는 들. ‘개들’이라고도 한다.
- 성통바우-골[골] 수무니골 안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
- 소대-바우[바위] 잣고개 동쪽 속리천가에 있는 바위. 칼바우 위에 있음.
- 속개울-골[골] 성고개 넘어 속리천 건너에 있는 골짜기.
- 수무니-골(水門谷)[골] 잣고개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골이 길어 5마장 정도나 되어 6.25때는 이 골에서 피난을 하였다고 함. 골짜기 막판에 한때 사람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함.
- 아가리 맥힌-골[골] 방두골 안에 있는 골짜기 큰 바위로 골 입구가 막혀 있다고 함.
- 안-산[산] 잣고개 앞에 있는 산.
- 안장-바우[바위] 잣고개 동쪽 속리천가에 있던 바위. 말안장처럼 생겼음. 1988년 폭파되어 없어졌음.
- 음달-말[터] 잣고개 동쪽 냇물 건너 음달쪽에 있는 마을터. 전에는 마을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밭으로 변하였음.
- 이미니-골[골] 수무니골 입구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 이미니라는 사람의 묵묘가 있다고 함.
- 작은-골[골] 잣고개 남서쪽 국사봉에 있는 골짜기.
- 잣-고개(栢峴)[고개] 잣고개 서북쪽에 있는 고개. 산외면 백석2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마루에 잣나무가 있었다고 함.
- 주막-거리[거리] 잣고개 앞 활고개 밑 도로 가의 거리 전에 주막이 있었다고 함.
- 주막-뒷산[산] 잣고개 동남쪽 도로 가에 있는 산.
- 진-골[골] 방두골 안에 있는 골짜기. 골이 길다고 함.
- 진천샌님모이-골[골] 수무니골 안에 있는 골짜기.
- 칼-바우[바위] 잣고개 동쪽 속리천가에 있는 바위. 칼처럼 길다고 함.
- 큰-골[골] 잣고개 남서쪽 국사봉에 있는 골짜기.
- 큰소나무-버덩[버덩] 수무니골 안에 있는 버덩. 합천군수 묘가 있음.
- 태봉-산(胎峯山:491m)[산] 잣고개 서북쪽에 있는 산. 왕의 태를 묻었다고 전해오고 있음
- 퍼징이-안골[골] 수무니골 안 오른쪽에 있는 골짜기 안이 입구보다 넓게 퍼졌다고 함.
- 합천군수-모이[묘] 큰소나무골 펀던에 있는 묘
- 허지분-골[골] 잣고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형제-골(兄弟谷)[골] 잣고개 남쪽 속리천 가에 있는 골짜기. 형제가 피난하였다 함.
- 홍두깨-날[산] 잣고개 남쪽 국사봉에서 내려온 산등성이.
- 활-고개[고개] 잣고개에서 북암리로 넘어가는 고개.
5. 문화유적
- 나중경 효자각(羅重慶 孝子閣)
효자 안정인(安定人) 나중경의 효성을 기리는 정문으로 1854년(철종 5)에 명정되었다. 정문은 마을 앞 37호 국도변에 있으며 정언(正言) 권세형(權世衡)이 짓고 진사(進士)임성주(任聖周)가 쓴 행장(行狀)이 편액 되어있다.
- 어필각(御筆閣)
효자 나중경에게 1689년(숙종 15)에 준천첨(濬川첨)을 왕이 하사하였던 것을 1868년에 건물을 짓고 편액 하였다. 이제 준천첨 판각은 도난 당하여 없어지고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이 쓴 제액(題額)은 남아 있으나 몹시 퇴락 되었다.
- 백현산성(栢峴山城)
성고개(324m)에 있는 둘레 242m의 돌로 쌓은 성으로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형체는 뚜렷하게 남아있다. 이 마을이 속리산에서 청주로 통하는 길목이 되므로 청주로 향하거나 청주에서 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어 규모는 작으나 고개 위에 자리잡고 있어 그 기능은 자못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이 성 이외에 마을 뒷산인 태봉(태봉:491m)에도 성이 있어 형제성이라 부르고 있다.
- 월파정지(月波亭址)
나상덕(羅相德)이 선조인 효자 중경(重輕)의 유지를 계승하고 효행을 기리고자 1944년 건립하였으나 1985년 무너지고 말았다. 정자 앞에 있던 연지(蓮池)는 반 이상 매몰된 상태다.
6. 집성
안정 나씨(安定 羅氏) 집성촌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6호만 거주하고 있음.
7. 산업
8. 기타
마을 앞 속리천 냇가 정자나무 아래에 1992년 마을 자랑비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