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속리산의민속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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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원래 탑은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부터 죽은 사람의 추모공양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입적하자 여덟 개의 탑을 세우고 진신사리를 그 속에 나누어 넣은 뒤 불탑을 건립했다. 이 탑의 둘레를 남몰래 혼자 돌거나 여럿이 무리를 지어 도는 것은 생사의 피안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는 바라밀다행사 중의 하나이다. 일반 신도들에게 있어 이러한 수행과 가장 관계깊은 것은 절에서 오리는 제이다. 제가 끝나면 신도들은 승려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고 저마다 소원을 기구하는 것이다. 작게는 왕생극락과 크게는 국태민안을 빈다. 원래 탑돌이는 단독으로 자기의 소망을 은밀히 기원하는 것이었으나 제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탑돌이가 이뤄졌다.

하여 인도 시바(siva)敎의 주신인 대자재가 우리나라에 불교와 함께 들어와서 속리산에 토착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자재(大自在)’란 말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들어온 것만은 확실하지만, 우리나라의 성기신앙은 인도의 대자재에서 전래된 것은 아니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 우리나라에도 선사시대부터 성기신앙이 있었으며 사람이 여자의 성기에서 태어나는 신비와 외경에서 여근을 생명의 근원으로 신성시하면서 주술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신격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속리산에 있었다는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를 우리나라 고유의 성신(性神)을 모신 사당으로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성신앙은 옛날부터 있어도 남근은 거의가 주술적 또는 공물로 바쳐진 것이지 그것을 주신으로 모신 사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원이 많아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형식이 중시되던 탑돌이는 신도들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까지 함께 참가하게 되어 민속놀이로 발전해왔다. 탑돌이는 고유의 탑제에서 불교의 유입으로 불교의식화 되었고, 다시 불교의 민속화가 이루어진 민속놀이이다. 속리산탑돌이는 충청지역의 탑제 신앙을 바탕으로 불교 세시풍속화 된 독특한 민속연희이다. 팔상전의 참뜻이 탑돌이의 연행에 반영되었있다.

특색

속리산은 산세가 빼어나고 범속을 떠난 듯한 경관으로 법주사를 비롯한 많은 암자가 있다. 법주사는 신라 24대 진흥왕 34년(서기 553년) 창건되었으며 그 중앙에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은 불교건축미의 정수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유일의 목조 불탑이다.예부터 불교신도와 주민, 수도승들이 모여 팔상전을 돌며 불도, 염원, 공덕, 공양 등을 올렸다. 그리고 이때는 범패에 맞추어 흥겹게 탑돌이를 한다.속리산탑돌이는 부처님을 예경으로 맞이한다는 의례적 요소와 세시풍속에서 치성을 위한 축제적 요소가 담긴 연희다.

이 탑돌이는 명맥이 끊어졌다가 1970년에 다시 고증 발굴되었고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70년 10월, 전남 광주공설운동장)에서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바가 있으며 속리축전에서 명맥을 이어오다 매년 초파일 법주사에서 불교의식행사로 또한 지역 고유의 민속행사로 실시해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