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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시인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1918년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에서 태어난 오장환시인은 1951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였다. 오장환시인은 휘문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지용시인에게서 시를 배웠다. 휘문고등학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교지 《휘문》에 「아침」,「화염」과 같은 시를 발표하고,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어려서 박두진시인과는 안성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으며, 일본 지산중학에 유학하고 온 뒤부터는 서정주, 김광균, 이육사시인 등과 가깝게 지냈다. 1937년에 첫 번째 시집 『성벽』, 1939년에 두 번째 시집 『헌사』를 내고 난 뒤에는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서정주 시인은 전한다. 일제말기 단 한 편의 친일시를 쓰지 않으면서 그 어둡고 궁핍한 시기를 견딘 오장환시인은 신장병을 앓다가 병상에서 해방을 맞는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 새로운 국가건설에 대한 꿈과 열정, 부끄러운 심정 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시집 『병든서울』을 발간하였다. 이 시집은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오르는 등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시「절정의 노래」는 중학교 5,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오장환시인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신탁통치나 통일에 관한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길 바라며 지방으로 문화선전활동을 다니며 시낭송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면서 테러를 당해 치료할 곳을 찾아 남포로 갔고 거기서도 치료를 할 수 없어 모스크바 볼킨병원으로 후송을 갔다. 그리고 6.25전쟁의 와중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34살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2006년에 개관한 오장환문학관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오장환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 안에는 휘문고 교지 《휘문》에 실린 초기 시,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지《조선일보》등에 발표한 오장환 시인의 동시, 이육사 시인에게 보낸 친필 엽서, 해방 후 중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해마다 9~10월 오장환문학제가 이곳에서 열리며 백일장, 시그림그리기 대회, 시낭송대회, 문학강연 등이 열리고 있다. 「오장환 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도종환 시인이 오장환문학관 명예관장으로 있다.